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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은 AI 시대에도 경쟁력이 있을까? ‘제조 AI’가 중요한 이유

vik 읽는 시간 약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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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고 하면 가장 먼저 챗봇이나 검색 서비스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공장으로 들어가면 AI의 역할은 전혀 달라진다. 제품의 불량을 찾아내고, 설비가 언제 고장 날지 예측하며, 생산 순서를 바꾸고, 로봇이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판단하는 데 AI가 사용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런 ‘제조 AI’가 중요한 산업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이 제조기업의 AI 전환에는 적극적이지만 이를 움직이는 핵심 AI 공급 기반은 해외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한국이 오랫동안 축적한 제조 경험을 AI와 결합한다면 산업 현장에 특화된 AI에서는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AI 시대의 제조업 경쟁은 결국 누가 더 좋은 AI 모델을 만드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AI가 실제 공장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제조 AI는 우리가 쓰는 챗GPT와 무엇이 다를까

생성형 AI는 사람이 질문하면 글이나 이미지, 코드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강하다. 제조 AI는 이보다 훨씬 구체적인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동차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생산라인에서는 수많은 부품이 일정한 순서로 움직이고 로봇과 작업자가 동시에 일한다. 카메라가 제품을 촬영하면 AI가 미세한 결함을 찾아낼 수 있고, 설비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온도 데이터를 분석하면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AI가 단순히 문제를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주문량과 재고, 설비 상태 등을 분석해 생산계획을 조정하고 상황이 바뀌면 스스로 작업 순서를 수정하는 ‘자율제조’로 발전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도 생성형 AI와 달리 에이전틱 AI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외부 도구를 사용하면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제조에서 중요한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쉽게 말하면 기존 스마트공장이 공장의 정보를 디지털로 연결하는 단계였다면, 제조 AI는 그 정보를 이용해 AI가 판단하는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에는 AI 기업이 갖기 어려운 자산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에도 기회가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이 ‘현장 데이터’다.

AI가 공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단순히 인터넷에 존재하는 많은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 특정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어떤 진동이 발생하는지, 어떤 온도에서 불량률이 높아지는지, 숙련공이 제품의 미세한 이상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같은 제조 현장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데이터는 하루아침에 만들기 어렵다. 자동차·반도체·조선·철강·배터리 같은 산업에서 오랫동안 공장을 운영하면서 축적된 생산 경험과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가진 장점도 여기에 있다. 세계적인 범용 AI 모델 경쟁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을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한국에는 오랫동안 축적한 제조업 기반이 있다. 산업연구원 역시 범용지능 자체를 만드는 경쟁보다 이미 만들어진 AI를 산업 현장에 구현하는 ‘산업 특화형 AI’를 한국의 현실적인 승부처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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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제조 현장에는 숫자로 기록하기 어려운 지식도 많다. 숙련공이 기계 소리를 듣고 이상을 알아채거나 제품의 미묘한 상태를 보고 공정을 조절하는 경험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2027년 제조 AI 관련 사업 가운데 숙련공의 노하우를 데이터화하는 ‘제조 암묵지’ 사업에 대규모 예산을 편성한 것도 이런 이유와 연결된다. 제조업에서 AI 경쟁력은 컴퓨터 성능만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공장에 쌓여 있던 지식을 얼마나 데이터로 바꿀 수 있느냐에도 달려 있다.

AI를 도입하면 공장 생산성은 무조건 올라갈까

그렇다고 공장에 AI를 설치하는 순간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AI에 많은 돈을 투자해도 사용할 데이터가 정리돼 있지 않거나 기존 생산설비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는 기계마다 사용하는 데이터 형식이 다르고 오래된 설비에는 충분한 센서가 없는 경우도 있다.

AI가 잘못 판단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도 일반 서비스와 다르다. 챗봇이 틀린 문장을 만드는 것과 공장 AI가 생산설비를 잘못 제어하는 것은 피해 규모가 다르다. 품질 문제나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성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제조 AI에서는 데이터와 함께 디지털 트윈 같은 기술도 주목받는다. 실제 공장이나 제품을 디지털 공간에 구현하고 생산조건을 바꿔가며 결과를 미리 시험하는 방식이다. 제조업계에서도 AI 투자를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려면 제품과 공정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제약공장처럼 전통적으로 사람이 많이 관여했던 생산현장에서도 AI 비전검사와 로봇을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이 직접 확인하던 공정을 AI와 로봇이 보조하면서 불량을 줄이고 생산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결국 AI 도입 자체가 경쟁력이 아니라 AI를 실제 생산과 연결할 수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셈이다.

제조 AI 경쟁에서 한국이 놓치면 안 되는 것

여기에는 한국 제조업이 해결해야 할 약점도 있다.

한국 기업이 제조 현장에서 AI를 많이 사용하더라도 핵심 AI 모델과 클라우드, 반도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해외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AI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해외 기술에 대한 의존도 역시 커질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강조한 부분도 이것이다. 세계 AI 경쟁이 하나의 기술을 잘 만드는 경쟁에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 모델, 플랫폼, 응용서비스까지 연결하는 ‘AI 풀스택’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조기업의 AI 도입만 빠르게 늘리고 이를 공급하는 국내 기술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과거 소재·부품·장비에서 경험했던 해외 의존 문제가 AI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AI 기술을 한국에서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이 잘하는 영역에서 쉽게 대체되지 않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도체 공정에 특화된 AI, 조선소의 생산계획을 최적화하는 AI, 배터리 불량을 찾아내는 AI처럼 산업마다 필요한 기술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제조기업의 현장 데이터와 국내 AI·로봇·센서 기업의 기술이 연결되면 범용 AI와는 다른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제조 AI를 볼 때도 “어느 기업이 AI를 도입했다”는 뉴스만 볼 필요는 없다. 실제 불량률과 생산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사람의 경험이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는지, 국내 AI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AI 시대에도 공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가 발전할수록 현실 세계에서 자동차와 반도체, 배터리와 선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다시 중요해질 수 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AI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보다,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제조 경험을 AI가 다른 나라에서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생산능력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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