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건설비가 비싼데 왜 전기 생산비는 낮을까?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데는 막대한 돈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부지를 정하고 설계와 인허가를 거쳐 실제 발전을 시작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리고, 건설 과정에서 들어가는 투자비도 크다. 그런데 전력시장에서는 원전을 두고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원이라는 설명도 자주 나온다.
언뜻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비싸게 지은 발전소에서 어떻게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의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발전소의 경제성을 단순히 ‘짓는 데 얼마가 들었는가’가 아니라 건설비, 연료비, 가동률, 수명, 금융비용을 함께 놓고 봐야 한다.
최근 이 문제가 다시 중요해진 이유도 있다. 한국에서는 경북 영덕이 대형 원전 2기 부지로, 부산 기장이 상용 소형모듈원자로(SMR) 부지로 선정됐다. 계획대로라면 대형 원전은 2037~2038년, SMR은 2035년까지 준공을 추진한다. AI와 반도체 같은 산업이 성장하면서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발전원의 가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왜 처음 지을 때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할까
발전소의 비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발전소를 만들어 놓기까지 들어가는 비용과 발전소를 가동하면서 계속 발생하는 비용이다. 원전은 이 가운데 첫 번째 비용의 비중이 매우 큰 발전원이다.
거대한 원자로와 터빈뿐 아니라 격납건물, 냉각설비, 안전설비와 비상전원 등 복잡한 시설이 필요하다. 설계부터 건설, 검사와 인허가까지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도 길다. 따라서 실제 전기를 생산하기 훨씬 전부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여기에 금융비용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돈을 빌렸는데 완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 전기를 한 번도 팔지 못한 상태에서 이자가 계속 쌓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원전 사업의 높은 초기 투자비와 긴 건설기간, 공사 지연과 비용 증가 가능성을 원전 금융의 주요 위험으로 지적한다.
그래서 같은 원전을 짓더라도 계획된 기간과 예산 안에서 완공하느냐에 따라 경제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원전 경제성에서 ‘건설기간’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가동을 시작하면 왜 비용 구조가 달라질까
발전소가 완성된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전은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고 한번 가동하면 대규모 전력을 장기간 생산할 수 있다. 발전량에 비해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연료 가격 변화가 전체 발전비용에 미치는 영향도 화석연료 발전과 다르다.
천연가스 발전소를 생각하면 차이를 이해하기 쉽다. 가스발전은 원전에 비해 발전소를 건설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지만 전기를 생산할 때마다 상당한 연료가 필요하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오르면 발전비용도 영향을 받는다.
반면 원전은 처음 발전소를 만드는 데 큰돈이 들어간 대신 완공된 설비를 오랫동안 가동하면서 투자비를 나누어 부담하는 구조에 가깝다. 발전소가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많은 전기를 생산할수록 처음 투입한 막대한 비용이 더 많은 발전량에 분산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가동률이다. 똑같이 수조원이 들어간 발전소라도 자주 멈춰 적은 전력만 생산하는 것과 장기간 높은 가동률로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것은 전기 한 단위당 부담해야 하는 고정비가 달라진다.

결국 원전의 경제성은 ‘건설비가 비싸다’와 ‘전기 생산비가 낮다’ 가운데 하나만 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기 투자비가 크지만 완공 이후 오랜 기간 대규모 전력을 생산하면서 그 비용을 분산시키는 것이 원전의 기본적인 경제 구조다.
원전이 싸다는 말에도 빠져 있는 비용이 있다
그렇다고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무조건 싸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 발전원의 비용을 어디까지 포함해 계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에는 건설비와 연료비 외에도 운영·정비 비용이 들어간다. 높은 수준의 안전설비를 유지하고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야 하며,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해야 한다. 발전소의 수명이 끝난 뒤에는 시설을 해체하는 데도 비용이 필요하다.
특히 새 원전을 건설할 때는 공사가 늦어지는 것이 경제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예상보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면 건설비뿐 아니라 금융비용까지 늘어난다. 아직 전기를 생산해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투자한 자금에 대한 비용은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미 건설비 상당 부분을 부담하고 오랫동안 운영해온 기존 원전은 비용 구조가 다르다.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고 필요한 설비 투자를 거쳐 계속 운전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새 발전소를 짓는 것과는 경제성 계산이 달라진다. 실제로 IEA도 신규 대형 원전과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은 투자와 금융 측면에서 다른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발전원끼리 경제성을 비교할 때는 단순한 연료 가격이나 건설비 하나만 봐서는 부족하다.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고 연료를 공급하고 마지막에 해체하기까지 전체 기간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동안 생산하는 전력량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AI 시대에 세계가 다시 원전을 보는 이유
최근 원전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전력 수요의 변화도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처럼 많은 전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시설이 늘면서 단순히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필요한 시간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날씨가 좋을 때만 가동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서버가 24시간 운영되는 만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하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함께 저장장치, 송전망, 가스발전, 원전 등 여러 전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가 각국 전력정책의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이유다.
IEA 역시 앞으로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안정적인 저탄소 전원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적으면서 날씨와 관계없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6년 신규 대형 원전 2기의 부지가 영덕으로 결정됐고 부산 기장에는 국내 첫 상용 SMR 건설이 추진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반도체와 AI 등 국가전략산업 성장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원전의 경제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신규 원전이 계획대로 건설되는지, 실제 건설비가 얼마인지, 금리는 어느 수준인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동되는지에 따라 최종 비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발전소의 경제성은 결국 ‘평생 비용’으로 봐야 한다
원전의 경제성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발전소에도 일종의 생애주기가 있다는 점이다. 건설하기 전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완공된 뒤에는 수십 년 동안 전기를 생산하며, 마지막에는 해체와 폐기물 관리 과정이 남는다.
그래서 원전이 싸냐 비싸냐는 질문에는 하나의 숫자로 답하기 어렵다. 초기 건설비만 보면 원전의 부담이 크게 보이지만 장기간 높은 가동률로 많은 전력을 생산한다면 전력 한 단위에 배분되는 비용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건설이 반복해서 지연되고 투자비와 금융비용이 증가하면 경제성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이 원리는 원전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연료비가 거의 없지만 발전량이 날씨에 영향을 받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전력망과 저장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 가스발전은 비교적 빠르게 건설하고 필요한 시간에 발전하기 유리하지만 국제 연료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발전원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지점이 서로 다른 것이다.
결국 전기를 만드는 비용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발전소 하나를 짓는 데 얼마가 들었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처음 투자한 돈, 자금조달 비용, 연료비와 운영비, 실제 발전량과 가동기간, 폐기물 관리와 해체 비용까지 살펴봐야 한다.
원전은 바로 이 경제 원리를 이해하기 좋은 사례다. 건설비가 비싸다는 사실과 장기간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때 비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비싼 발전소가 반드시 비싼 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며, 발전소의 진짜 경제성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느냐까지 봐야 알 수 있다.
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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